우여곡절 끝에 1차 런칭이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가야 할 길이 멀었다. ‘플러스친구’ 브랜드를 중소 사업자(=소상공인 또는 롱테일 사업자)로 확장해야만 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린스타트업’ 개념을 도입하여 우선 4개 카테고리, 10개 광고주(회사 지인들을 통해)를 섭외하여 무료로 사용하게 하고 그 효과를 테스트하였다. 그 결과 온라인 쇼핑몰 브랜드는 트래픽에 따라 유의미한 매출이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광고주들은 카톡 친구목록에 노출 없이 자체적으로 매장이나 지인을 통해 친구를 모으기는 매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고민은 중소 사업자들을 위한 광고단가가 기존 대기업을 위한 가격과 충돌이 나는 ‘자기잠식(=제살깍기, 동족포식, 카니발라이제이션)’이었다. 즉, 런칭 때 대형 브랜드를 위해 설정한 가격정책 때문에 중소 사업자로의 확장이 어렵게 된 것이다. 대형 브랜드와 중소 사업자 플러스친구 둘 다 형태와 기능은 같아 구분이 어려운데, 가격은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래서, 기획 단계부터 플랫폼을 오픈형인지 폐쇄형인지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플러스 친구를 폐쇄형 구조로 시작했던 이유는 광고주가 보내는 푸쉬 메세지가 스팸화 되어 카톡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임 플러스친구 메시지가 너무 많이 발송되어 게임 유저들조차 불만이 증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플랫폼이 폐쇄형으로 가다 보니, 내부 구성원들 사고방식도 플랫폼 확장성보다는 기존 고객과 매출의 수성을 위해 보수적 성향으로 변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정책결정을 할 때 기존 고객과 광고상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우선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게임 플친은 A 때문에 안된다’ ‘금융 플친, 대출 플친, 듣보잡 대행사는 B 때문에 안된다’ ‘듣보잡 대행사들이 카카오 상품을 잘못 알고 제안을 한다’ 등등 내부 구성원들이 자의적, 보수적 판단을 하였다. 이 때문에 무한 확장 가능한 플랫폼의 길은 멀어져 갔다. 더군다나 생각이 다른 내부 구성원들 간 갈등도 더욱 심해졌다.
결국 플러스친구가 대기업 위주의 브랜딩(배너) 상품으로 포지셔닝할 것인가? 검색광고 주요 고객인 롱테일 광고주를 타겟으로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했다.
한편, 모바일 홈페이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광고주들에게 플친 홈에서 다양한 정보와 메세지를 올리고, 이용자와 쌍방향 소통을 하려는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 또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광고주 또는 대행사들이 그 당시 플러스친구 형식에 맞춰 소재를 제작하기 번거로웠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플랫폼이 정착되려면, 플랫폼 사업자뿐만 아니라, 밸류체인(생태계 참여자)에 있는 중간자들의 참여가 절실함을 깨달았다. 많은 참여자들이 없었으니, 유저들 입장에서도 모바일 홈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는데, 그나마 브랜드 운영자에게 채팅으로 빠르게 물어볼 수 있는 봇 서비스만이 활성화되었다. 플친의 봇 서비스만 별도로 발전시켜 만든 것이 국내에는 “채널톡” 해외에는 “샌드버드”가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플러스친구가 가장 먼저 시작했으니, 제대로만 발전시켰으면 봇 서비스만으로도 엄청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위와 같이 고객사, 파트너사, 유저들의 문제와 사내 내부적인 이유가 혼재되어 플러스친구 확장 프로젝트는 그 이후 오랫동안 해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수년이 흐린 뒤 현재의 모습(톡채널)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명언이 생각났다.
당시, 스마트폰 앱 초기 모바일 광고/마케팅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광고주들(광고대행사 포함)에게 카카오에서 정한 포맷으로 콘텐츠를 제작/운영하라 것은 무리한 요구였고, 그렇다고 카카오가 광고주들을 위해 외주제작해 주는 것도 맞지 않았다.
대부분 사업자들이 모바일 홈이 준비되고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점부터 카카오톡을 활용한 마케팅을 자발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10년이 훨씬 지나서였다. 그때는 너무 앞서갔기에 고민이 깊었던 것 같다.
한 가지 더 깨달은 점은 광고산업의 변화는 IT서비스 플랫폼의 변화에 훨씬 후행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