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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밥상

     나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밥상(식사)은 1998년 호주 Cairns에서 내가 직접 영어 선생님들을 초대하여 마련하였던 한국식 밥상이었다.

     나의 식탁 메인 메뉴로는 하얀 쌀밥과 가공처리된 김치, 단백한 감자볶음과 불고기, 카레, 된장국(미소 수프)과 맥주가 있었고, 이어서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준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당시 가장 좋아하던 영어 선생님 2명과 함께 했던 즐거운 저녁식사를 통해 나는 식사라는 것이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목적이고,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호주에 있었을 당시 나는 학교에서 뿐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도 영어를 사용하기 위해 호주의 원어민 커플과 같은 집에서 살았다.(unit share 라고 한다. 방2개짜리 집을 빌려서 월세를 나누어 내는 형태) 그래서, 수업시간이후에 선생님들과의 모임과 활동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나에게는 무조건 우선순위 0순위였다. 

     IMF 당시 고환율의 영향도 있었지만, 철이 들고 나서 갔던 어학연수라 나는 항상 초조해했다. 최대한 빨리 배워야 한다. 이 시간이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배워야 한다. 

시간에 대한 초조함은 강박으로 바뀌어갔다. 학교에서의 수업이 시간당 얼마이고, 그럼 분당 얼마이고, 내가 선생님과 대화하는 것은 분당 얼마짜리이겠다라고 끊임없이 계산하던 아주 피곤한 학생이었다.

     

      그런 나에게 영어 선생님과 나만의 대화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그당시에 가장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에게 한국식 저녁식사를 대접한다고 집으로 초청하였다. 

      유머감각이 넘쳐 항상 수업이 재미있었고 그래서 학생들에게 인기 많았던 캐나다 총각 남자 선생님과 친절함이 몸에 배인 전형적인 호주 유부녀 담임 선생님 그리고 같이 살았던 호주 원어민 여자와 그의 피앙새. 

이렇게 5명이 함께한 식탁이었다. 동시에 3명의 영어 선생님들과(호주 원어민 피앙새는 한국인 형이었다. 나에게는 영어 선생님이 아니었다) 단 한명의 학생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다. 이만큼 소중한 시간이 그당시 나에게는 없었다. 

      외국인 학생에게 친절할 수 밖에 없는 영어 선생님들에게 한국 음식의 대접은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그렇지만 궁금하다. 동양인 남학생의 저녁 초대가 그들은 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진짜 친구의 친절한 호의여서 진짜로 즐거운 시간이었을까?

어쨋든 대화의 주제는 서로 다른 문화, 음식, 서로의 취향 그리고 물론 영어...등 다양한 화제로 거의 3시간의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무척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요리 초보였던 내가 한 것이 얼마나 맛이 있었겠는가마는 어쨋든 나의 인스턴트식 한국 밥상에 대해 연신 'Love it, Love it' 을 외치며 칭찬해 주고 잘 먹어 주었던 그 선생님들.

지금은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궁금하다. full name 이라도 기억했으면 Facebook 에서 친구찾기를 해 보았을텐데...함께 찍었던 사진도 잃어버려 이제는 모두 희미해진 이름과 기억들. 

 

        그냥 아련한 한편의 추억으로 나에게 자리잡고 있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밥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