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비개발자의 바이브코딩 6개월
작년 말부터, AI 트렌드를 지켜보면서 FOMO가 생겼다.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가장 큰 변화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이 변화를 이끄는 글로벌 빅테크와 머신러닝 연구자만의 일인가?
그래서 다양한 AI 툴을 이것저것 사용해 보고, 관련 유튜브 영상들도 챙겨봤다. 그리고 우연히 Claude AI에게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어달라고 한번 던져봤다. 30분쯤 지나니 그럴듯한 페이지가 나왔다. 그리고, 결심했다.
"AI 트렌드를 따라가 보자. 바이브 코딩을 한번 해보자."
문과 출신으로 30년 가까이 테크 IT 업계에 있었지만, 정작 코드는 한 줄도 직접 짜본 적이 없었다. 카카오에 있을 때도, 스타트업 대표로 있을 때도 개발은 늘 'SW 개발자의 일'이라 여겼고, 그래서 창업에는 반드시 CTO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올해 결심 이후, 매일 한두 시간씩 Claude와 씨름했고, 회사 홈페이지(barongp.com)도 풀스택으로 직접 만들어 기존 홈페이지를 마이그레이션 하면서 새로 배포했다. 업무 관련 콘텐츠 생성도 자동화하고, 자산 분석, 수금계획 프로그램, 영업 리드 분류와 정리 프로그램 등을 바이브 코딩으로 했다. 6개월간의 바이브 코딩이 내게 남긴 건 코딩 실력도, 당장의 매출도 아니었다. 기존의 내가 일하는 방식에 대한 관점이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비개발자로 바이브 코딩 경험을 실제 해보면, AI 전문가라고 하는 유튜버들이 말하듯이 생성형 AI로 제품과 서비스 만드는 데 "딸깍"으로 절대 끝나지 않는다. 지난 6개월간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코딩이 아니라 '오류 화면 캡처해서 물어보기'였다. 각종 에러 메시지(false, fail..)가 뜨면 화면을 캡처해 Claude에게 던졌다. "이건 왜 이래?" "네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 왜 안돼?" 그렇게 물어본 게 수백 번이다. 그러면 클로드는 "죄송합니다. 다시 해보세요"의 무한 루프 반복이었다. 재반복 횟수는 무한대였다.
특히 타 서비스를 API로 연결하는 대목에서 번번이 무너졌다. 분명 시킨 대로 했는데 안 되고, 어디서 꼬였는지도 모르겠고. '역시 개발의 기초가 없으니, 이것은 내 영역이 아니구나' 싶어 프로젝트를 접으려고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남들은 잘하고 있는데, 나만 그런 것인가? 30년차 테크업계 전문가인데, 여러 번 절망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
결국 'AI와 익숙해지는 방법을 배우다'
AI로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스마트한 명령을 줘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일을 잘 시키는 법은, 옛날에 선임이 신입에게 일을 시키던 것과 비슷하다.
- 맥락과 함께 지시한다. "보고서 써줘"보다 "누구에게, 어떤 톤으로, 어느 분량으로"라고 부탁하면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컨텍스트 엔지니어링)
- 자료를 미리 챙겨준다. 회사 자료나 이전 문서를 함께 보여주면 우리 회사 분위기에 맞춰 써준다.
- 한 번에 완벽한 결과물을 기대하면 안 된다. 여러 번 고치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 (요즘 이것을 '하네스 엔지니어링'이라고 부른다)
생성형 AI가 발전하면서 우리는 시장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외주 개발 견적가격은 말이 안 되게 떨어졌고, 주위 대표들은 주니어를 정직원으로 뽑아 키우기보다 인턴과 'AI 팀원'을 두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기업과 관리자에게 부담이자 크나큰 리스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따로 글을 써야겠다.)
그런데, AI에게 무엇을 시킬 것인가? 더 중요해진다.
나는 30년 가까이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고, 다양한 사업계획을 만들고 평가하고 조언하다 보니, AI에게 무엇을 시켜볼지 아이디어가 많다. 그러나, 아들 또래의 대학생들이나 주니어 경력자들은 AI에게 어떻게 업무를 할지 보다는 AI와 무엇을 해야 할지가 더 중요해졌다.
이에 대한 나의 조언은 이렇다. 거창한 창업이 아니어도 무엇이든 AI와 직접 만들어볼 것. 사이드 프로젝트, 동아리, 각종 AI 커뮤니티와 해커톤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참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GitHub든 블로그든 노션이든. 사소한 미팅 내용, 정보들도 디지털 데이터로 쌓으면 AI를 활용해 자산이 되고 언젠가 나만의 포트폴리오가 된다.
6개월간 내가 배운 세 가지
솔직히 코딩 실력은 아직 멀었다. 그런데 이전과 달라진 것이 생겼다.
1. 사고하는 방식. AI는 늘 단계적으로 사고한다. 일을 어떻게 쪼개고, 어디부터 풀고, 어떤 순서로 검증할지를 명확히 한다. 나는 매일 똑똑한 공대생 후배와 함께 일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2. 일하는 방식. AI는 가설을 세우고, 시도하고, 검증하고, 수정한다. 내가 '이 정도면 되겠지' 하던 부분을 매번 점검한다.
3. 메타인지. 이게 가장 크다. "나의 대화 방식을 말하기 전문가 입장에서 평가해 줘"라고 하면 전문가 관점에서 내 결과물을 조언한다. 언제부터인지 직장 선배가 없어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일하게 된 지 오래되었다.
많은 기업의 대표, 임원들도 그럴 것이다. 싫은 소리, 불편한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생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AI는 직설적이며, 솔직하다. 그래서, 받아들일 때 내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 덕분에 내 글과 발표, 결정을 여러 시점에서 다시 보게 된다. 이 세 가지가 코딩 실력보다 훨씬 큰 자산이 됐다.
포커판의 비유
예전 직장 상사의 말이 떠오른다. 포커판에는 네 종류의 플레이어가 있다고 한다.
자기 패만 보는 사람은 하수. 남의 패를 읽을 줄 알게 되면 중수. 남이 내 패를 어떻게 볼지를 알게 되면서 고수가 된다고 한다. 이때부터 블러핑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이상, 최고수는 아예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꾼다.
AI를 활용하는 타입에 대입해 보면, 현재 자기 업무에만 활용하는 사람, 시장과 AI의 흐름을 읽고 활용하는 사람, 그 흐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설계하는 사람, 새로운 영역을 만드는 사람이 함께 존재한다. 나는 과연 어디 속 할까? 메타인지만 가져도 충분히 고수다. 소위 말하는 AI native가 된다는 것은 기존에 만들어진 비즈니스 방식을 AI로 새로 쓰는 사람이다.

[결론]
AI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말은 수비적이고 수동적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시키는 일만 잘하던 영역은 분명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무엇을 시킬지 정하는 일, 60~70%짜리를 알아보고 고치는 안목, 의도와 취향을 만드는 일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그 안목은 결국 직접 깨지면서 만들어야 한다.
수백 번 막히고,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불확실한 시대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메일 한 통, 보고서 한 장,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부터 AI로 뭐라도 해보는 것이다.